요즘 AI와 자동화로 인한 재화·서비스의 실질 생산 비용이 극단적으로 떨어진 미래를 자주 떠올린다. 거기에 닿는 길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그 끝에서 개인은 어떤 위치에 서게 될지에 대한 메모다.
시나리오의 골격
머릿속에서 굴리는 인과 사슬은 대략 이렇다.
- AI·자동화로 대부분 재화·서비스의 실질 생산 비용이 하락 → 시장 경쟁에 의해 실질 가격에도 하락 압력
- 노동 가치의 상실로 대규모 실직 → 소비력 하락
- 사회 시스템 유지를 위해 기본소득 또는 대규모 양적 완화 → 화폐의 실질 구매력 하락, 명목 가격 상승 압력
- 실질 가격이 떨어져도 소비력이 더 빠르게 떨어지면, 실질 시장 파이는 결국 축소되는 쪽으로 우세
여기까지 블랙스완 없이 연착륙으로 도달하려면 꽤 빡센 가정이 추가로 필요해 보인다. 중간에 한두 번은 대공황 비슷한 국면을 맛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 글에서는 기존 자본주의·사회 체제가 통째로 붕괴하는 시나리오는 다루지 않는다. 그 시나리오는 핵전쟁 시나리오와 비슷한 위상이라 본인의 일상적 의사결정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보고, 그것이 일어나지 않는 경로만 가정한다.
5~10년의 의미
이 미래가 실제로 다가온다고 가정하면, 5~10년 안에 자본을 일정 수준 이상 끌어올리지 못한 사람이 자본 소득이 아닌 방법으로 이미 자산을 보유한 기성세대의 부를 넘어서는 것은 구조적으로 거의 불가능해지는 것 아닐까. AI 이전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방향으로 굳어진다는 의미다.
대규모 실직과 루드의 오류
“AI가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다”는 반론은 충분히 들었고, 그렇게 되면 좋겠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솔직히 묻고 싶다. 사람이 AI 또는 로봇보다 더 잘, 또는 더 저렴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남는가? 내 한정된 예측력으로는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소비의 주체는 인간이다” 이외에는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한 명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상태다.
기술적으로는 27년쯤이 되면 30~40%의 일자리는 없어져도 사회가 굴러갈 수 있는 수준이 되고, 그 비율은 점점 늘어날 것 같다. 사회적으로는 이 수치를 그대로 따라가지는 못할 것이다. 정부 정책, 노동법, 주요 대기업의 세계 경쟁력 등에 따라 실제 실직률은 다르게 결정될 것이고, 그 폭을 정확히 예측할 자신은 없다. 다만 Robotics·Physical AI 상용화 시점에 한 번 더 큰 점프가 일어난다고 가정하고 있다.
산업혁명·IT 혁명을 근거로 한 루드의 오류 비판도 안다. 그때도 총고용량은 오히려 늘었으니까. 다만 이번 변화의 특이점은 “지식 노동까지 포함해서 거의 모든 영역의 인간 비교우위가 동시에 무너지는 첫 사례”가 될 가능성이라고 본다. 그래서 과거 두 번의 혁명을 사례로 안심하기는 어렵다.
생산능력과 병목 자본은 다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리가 필요하다. AI가 풍부하게 만드는 것과 자본 자체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AI가 풍부하게 만드는 쪽은 일반적인 지식 노동, 생산 능력, 업무 자동화 같은 평범한 생산능력이다. 이 영역의 희소성과 수익률은 거의 확실히 낮아진다.
반면 다음과 같은 자본은 오히려 더 희소해질 가능성이 높다.
- 컴퓨팅 인프라
- 전력, 데이터센터 입지
- 독점 데이터
- 플랫폼·유통망
- 브랜드와 신뢰
- 고객 접근권
- 토지
모두가 무엇이든 쉽게 만들 수 있게 되면, 초과수익은 결국 “무엇을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고객에게 도달하고, 어떤 병목을 통제하느냐”**로 옮겨간다. 그래서 나는 AI가 자본 수익률을 전반적으로 낮춘다기보다는, 평범한 생산능력의 수익률은 낮추되 병목 자본의 프리미엄은 강화하는 쪽으로 작동한다고 본다.
사다리가 끊긴다는 것
내가 진짜 우려하는 지점은 그 다음이다.
대부분의 재화·서비스에 대한 시장의 지불용의가 극단적으로 낮아질 경우, 개인이 노동이나 소규모 사업으로 의미 있는 현금흐름을 만들고 그것을 다시 병목 자본에 투입하는 축적 경로 자체가 약해진다.
병목 자본은 여전히 비싸고 희소한데, 후발주자가 그것을 사거나 만들기 위해 올라타야 할 사다리는 사라지는 구조다. 생존 비용은 분명히 낮아진다. 동시에 계층 상승에 필요한 자산은 더 멀어진다. 흔히 빈부격차의 심화라고 부르는 것의 새 버전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AI는 자본 수익률을 일률적으로 낮추는 게 아니라, 평범한 생산능력의 수익률은 낮추고, 병목 자본의 프리미엄은 강화하며, 후발주자가 그 병목 자본에 접근할 사다리는 약화시킨다.
그래서 5~10년이라는 시간을, 적어도 그 사다리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일정 수준의 자본을 만들어둘 마지막 구간으로 의식하고 있다.
화살이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이 시나리오에서 사회 전반의 불확실성과 불안은 폭발적으로 커진다. 그 화살이 어디로 향하는가는 또 다른 큰 변수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표적 중 하나는 OpenAI, Anthropic, Google 같은 AI 기업이다. 이때 미국 연방정부가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는가가 중요해진다. 중국과의 AI 기술 경쟁을 위해 기업의 손을 들어주는가, 득표율을 위해 대중의 손을 들어주는가. 둘은 단기적으로는 정면 충돌하는 선택이다.
이 갈림길에서 한쪽으로 충분히 강하게 기울지 않으면, 정책이 산업·고용·규제 사이를 오가며 흔들릴 것이고, 그 변동성이 다시 자산 가격과 노동시장에 비대칭적으로 떨어질 것이다.
어떤 자세로 살아갈까
이 미래가 본격적으로 도래한다고 가정했을 때, 본인이 가지려는 태도를 정리하면 대략 이렇다.
- 5~10년의 시간 가치를 매우 비싸게 매기기. 이 구간이 사다리의 마지막 구간일 가능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 평범한 생산능력에서 얻는 현금흐름은 빠르게 가치가 잠식된다고 보고, 그 현금흐름을 그대로 소비하기보다는 병목 자본 쪽으로 최대한 옮겨놓는다.
- 동시에, 본인이 통제할 수 있는 작은 병목 자본 — 본인의 도달 범위, 신뢰, 채널, 데이터 — 을 의식적으로 키운다.
- AI 활용 역량을 미분값으로 본다. 지금 이 순간의 가속도가 1년 뒤의 적분값을 결정한다.
- 정책·정치 리스크를 시나리오에 항상 포함한다. 기술의 길과 정치의 길이 같은 방향으로 정렬되지 않을 가능성을 디폴트로 깔아둔다.
- 큰 그림을 비관하더라도 일상의 호기심과 학습은 비관에 휘둘리지 않게 따로 떼어둔다. 비관은 의사결정 변수이지 일상의 분위기는 아니어야 한다.
대공황 같은 국면을 한두 번 통과해야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다만 그 국면이 끝났을 때 어느 자리에 서 있을지는 지금 어떤 자본을 어떤 형태로 쌓아두느냐에 의해 거의 정해진다. 그게 지금 5~10년에 본인이 매기는 무거운 가치의 정체다.